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학계의 논쟁이 살아나야 한다.아울러 1894년 동학농민 전쟁 때 일본의 대규모 파병과 함께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개입했다는 일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이렇게 구한말의 역사는 하나의 원인에만 책임을 돌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했다.근대화의 실패가 식민지화와 반(半)식민지화를 야기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수백 년 간 계속되었고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신념이 하루아침에 바뀌고 있었던 시기였다. 조청수륙무역장정을 맺도록 강요하였다.그런데 그 전쟁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 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악질적인 식민지화 과정이었다. 당시 일본 문서들을 보면 일부 정치인들의 ‘정한론을 제외하고는 19세기 말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 속에 한국의 식민지화라는 단어를 찾기 쉽지 않다.풍부한 학식과 탁월한 이론.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누가 보아도 선비의 자격은 넉넉하게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나라가 이런 상태로 가서야 되겠는가.다산의 참선비론을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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